요상한데 한판 재미지게 놀았던 공연 하나 추천드립니다. (저는 2월 12일에 직접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오후 공연으로 보고 쓴 글입니다.)
- 장소: 뚝섬역 성수 아트홀에서 - 기간: 2017. 2. 10. ~ 26. - 제목: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 소개영상: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소개영상
1. 판소리지만 뮤지컬과 같습니다.
소극장 무대에 공간 구성과 소품들이 잘 놓여져있고~ 4명의 출연진이 등장해 연기와 노래를 통해 스토리를 진행시켜나갑니다. 판소리라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편의 뮤지컬을 본 것 같은데, 판소리+햄릿의 신선한 조합이 주는 컬쳐쇼크는 덤입니다.(중간에 심지어 판소리 하시던 분이 랩도 하시는데.. 라임따라 잘 꺽이는게 판소리랑 랩이 비슷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도...ㅋㅋㅋ)
소품을 적절하게 써서 한명이 여러 사람을 연기하는 데도 감정이입이 잘 되었습니다.
선왕 유령은 계단 구릉 위 투명한 보름달 종이 아래에서 말머리를 씁니다. 선왕 유령이 복수를 부탁할 때 말머리 탈을 쓰고 고개를 마치 무당이 굿하듯 헤드뱅잉 한다던가. 또는 오필리어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감당하지 못해 처연하게 무대를 돌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계단위 무대밖으로 사라져 죽는 것을 형상화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2. 20~30대 청년에게도 적극추천
극장에는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많았지만, 전 좀더 젊은 분들이 봐도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터파크에선가 인생 고민이 많은 청년들에게 이 뮤지컬을 추천한다고 했는데요. 음. 여기 20대 여자 청년, 동의합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이러저러하게 가늠해보고, 자신의 운명을 내던지는 햄릿의 심리를 4명의 햄릿이 친절하게 형상화해줍니다. 셰익스피어의 글이 함축적인 것에 대비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감정묘사에 더 친절합니다. 호기롭게 내질렀다가 두려워했다가 비통하다가 괴로우면서도 선택을 해가는 햄릿을 4명의 햄릿이 주거니 받거니 생각의 끈을 이어갑니다.
내가 인생고민을 했던 적이 있던가. 어떻게 내 내면을 들여다 보았던가. 내가 선택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무엇이 있었던가를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3. 판소리와 햄릿
판소리 하면 '한' 이 떠오릅니다. 뚜렷하게 정의내리지 못할 참 요상한 정서입니다. 그런데! 햄릿이 이렇게 '한' 이 많은 인물인지는 몰랐습니다... 걱정많고 소심한 인물이란 건 알았는데, 한으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한이란 욕구나 의지의 좌절로 인한 삶의 파국을 맞는 심경을 말합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처한 편집적,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 혹은 상처를 말하며, 의식과 무의식이 얽힌 복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웹 인용)
그리고 판소리가 심청가, 흥보가를 넘어서 햄릿과 같이 복잡한 이야기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판소리도 노래를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맛이 있습니다. 빠르게 우두두두두 말했다가 또 간질간질하게 노래했다가 복수해야할 때는 비장한 뮤지컬 남자배우처럼 내지릅니다.
아아따! 얼쑤! 와 같이 추임새도 흥겹고, ~하지라, ~하지요이잉 같은 충청도 전라도 구수한 사투리도 매력있었습니다. 남도 가락이 유명하듯 판소리는 전라도 사투리가 대세인가봅니다.
판소리와 햄릿 조합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공연을 강.추. 합니다. 더 자세한 후기는 아래 더보기를 클릭해주세요~
4명의 햄릿 To be or Not to be 한많은 햄릿, 판소리로 승화
출연진은 딱 4명, 그것도 햄릿이 4명입니다. 물론 스토리 진행을 보여줄 때는 한명씩 선왕 유령, 오필리어, 숙부, 친구 등등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햄릿 4명입니다. 햄릿 4명이 내안의 천사 악마가 같이 있는 것만 같이, 성향도 다른 햄릿이 주거나 받거니 고민을 나눕니다.
햄릿은 숙부의 배신을 보고 모른체하려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뛰쳐나가 복수를 해야한다고 공명심을 내비치고,
다른 햄릿은 복수로 인한 파멸에 두려움을 느끼고,
또 다른 햄릿은 자신의 복수로 인해 피치못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보며 나약함을 보입니다.
이렇게 늘 선택 전에는 생각의 끈을 여러 햄릿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풀어갑니다. 굉장히 심각한 얘기를 각 성향의 햄릿들이 다투는데요. 조그마한 까만 옷의 햄릿들이 돌아다니는게 귀여우면서도, 대화 내용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화의 양식이 판소리입니다.
판소리는 연사가 고수의 북소리에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마당놀이입니다. 음색은 카랑카랑하며, 음의 꺾임과 여백이 확-실하게 있는 노래양식입니다. 특히 우리네 정서 '한'을 잘 표현하는 양식인데요.
그런데! 햄릿이 이렇게 '한' 이 많은 인물인지는 몰랐습니다... 걱정많고 소심한 인물이란 건 알았는데, 한으로까지 승화될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한이 관객에게까지 다가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판소리를 하는데 햄릿이 구븨구븨 인생사 한탄을 하기도 하고, 오필리어가 햄릿의 변심으로 인해 미쳐가는 것도 애절하게 표현하고, 숙부에게 사주를 받고 자신을 감시하는 친구들에게 욕도 합니다. (랩하는 햄릿은 왜 한거였더라...) 어떤 한 햄릿이 우세하면서 선택이 내려지고 이 선택에 따라 햄릿의 복수가 진행됩니다. 4명의 햄릿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고민을 나누다가 딱 의견이 맞았을 때! 4명이 합창하는데요. 서로 음색이 다른 4명이 비장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마치 호레이아가 인생사에 대해 노래하는 것만 같은 비장함이 묻어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펜타노믹스 프로젝트 그룹 같기도 합니다.)
내가 인생고민을 했던 적이 있던가. 어떻게 내 내면을 들여다 보았던가. 내가 선택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무엇이 있었던가를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노년 관객들 사이에 뿅! 우리 커플 이상 우리 또래에게 추천하려고 유난히 길게 쓴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후기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