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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시대를 가르는 엉뚱한 할머니,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생활속 여러가지/독서 리뷰 2019. 6. 2. 12:43

    봉사활동과 원예클럽으로 무료한 날들을 지내던 만 60세 폴리팩스 부인. 어릴적 꿈인 스파이를 지원하러 CIA 에 무작정 찾아간다. 전형적인 미국인 타이틀을 따내고, 멕시코 잠입임무를 받는다. 관광객 행세를 하다가,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 가서 특정 인물과 접선하여 특정 물건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오는 미션이다. 

    그 물건은 남아메리카의 공산당 활동기록을 적은 문서였고, 어떤 영문인지 마오쩌둥의 게릴라를 도왔던 페르디도 장군에게 납치당한다. 그리고 폴리팩스 부인과 진짜 스파이 패럴은 정치범을 수용소, 알바니아의 산맥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폴리팩스 부인과 패럴은 탈출을 감행한다. 

    왜 최근 발간소설이 냉전시대의 유물을 얘기하나 싶었더니, 1966 년 작이다. (한국 발간만 2015년) 알바니아는 공산당 국가인 이탈리아, 소련 또는 중국의 눈치를 보는 가난한 나라로 묘사된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라서 가상의 나라인가 했더니 동유럽에 실존하는 나라였다. 처음 책을 덮었을 때에는 이 책이 루즈하고, 시대감각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창작시점이 1966년 이고, 알바니아가 실존국가이며 저러한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상당히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1966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얼마나 신선했을까?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회원국이자 소련의 위성국이었으나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진압한 것에 대해 항의를 표시하는 뜻으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탈퇴하였다. 소련이 이에 대해 프라하의 봄이나 헝가리 혁명처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은 이유는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경제적 가치도 있고 지리적으로 중요하기에 진압했지만, 알바니아는 하는 것이 고작 이탈리아 해군을 견제하는 것 뿐이었고 경제적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련의 원조가 끊겼고 알바니아는 유럽 최빈국으로 전락한다.

    엔베르 호자는 1985년 사망하였고,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차례로 민주화되자 1992년 붕괴된다.

     

    왜 군인들이 정치범들을 도와주지? 탈출에 도움이 되는 기적들은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지? 라고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위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나니, 스토리 속 군인들의 선택도 이해가 되었다. 이야기 중에는 알바니아 일병은 <알바니아 제대로 알기> 책을 폴리팩스 부인에게 전달하는데, 그것이 열쇠가 되어, 탈출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공산당을 제외하고 알바니아를 제대로 이해해달라는 부탁이 폴리팩스 부인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던 부탁이 아니었을까? 술취한 알바니아 일병이 미국 배심원제도와 부러워하고, 알바니아 국민들은 공산당 외압에 불만을 가지고 폴리팩스 부인일행의 탈출을 도와주기도 한다. 알바니아 군인과 국민들은 공산주의 이념의 지나친 개입에 대해 깊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선한 폴리팩스 부인이 그들을 위해주자, 마음의 벽이 무너졌던 듯하다. 

    능청스럽고 엉뚱한, 그런데 생각보다 기지가 넘치는 폴리팩스 부인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는 분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번외. 옮긴이의 말에서 <뜻 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을 발표하기 직전 1965년에 발간한 책에서 발췌한 글이다. <새로운 나라 A New Kind of Country> 저자, 도로시 길먼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닐까?

    "나는 무엇을 배웠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에 형태와 균형을 주어 하루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블루베리 파이를 만드는 법, 숨을 죽이고 날아다니는 새를, 익어가는 토마토를 관찰하는 법, 몸을 써서 일하는 방법, 풀을 베는 방법, 땅을 고르는 법, 구멍을 파고 고랑을 만드는 법, 민달팽이와 씨름하는 법, 그렇게 정원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새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 중 하나는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배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각기 산과 들과 깊은 골짜기와 폭풍, 잔잔한 바다로 된 나라가 하나씩 있고, 그 나라는 마치 제 3세계와 같이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 빈곤한 나라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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